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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굴 연대기 15화 —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

작성자 buildcraftlab77 · 인디 게임 개발자

본 글은 게임 제작자 본인이 초안을 작성한 뒤 AI 도구의 보조를 받아 구조와 맞춤법을 정리하고, 수치·사례·결론을 직접 검토하여 발행합니다.

요약

기억의 방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하루는 낙엽둥지 전원을 메인 터널에 모은다. 진화라는 단어의 무게를 나누고, 각자가 잃게 될 것과 남게 될 것을 하나씩 말하는 자리. 모아는 수확 도구를, 파종은 버섯 종균을, 짓다는 설계도를, 페르는 경비 자세를, 나라는 치유 가방을, 칼라는 정찰 구역을 — 각자가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꺼내놓는다. 잃어버릴 목록이 길어질수록 군집의 표정이 무거워지던 그때, 파종이 버섯 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한다 — “씨앗도 죽어야 싹이 트지.” 그 한 마디가 공기를 바꾼다. 하루는 자리를 조금 더 깊게 만들기 위해 — 지금까지 품어온 비밀 하나를 꺼낸다. 여섯 장의 카드. 관리자가 카드를 “읽는다”는 사실. 군집이 처음으로 카드의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이다.


15화.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

이전 줄거리

레기나가 하루를 여왕의 방 뒤편 기억의 방으로 데려가, 낙엽둥지의 모든 이전 세대 여왕들이 남긴 누적 먹이의 기록을 보여주었다. 진화의 수학 — 1조 먹이 기준, n의 세제곱에 비례하는 세대 레벨, 유산 포인트는 레벨의 차분. 그리고 레기나 자신의 과거: 젊은 시절 각성 2단계에 손을 댔다가 자아의 일부가 “그림자”로 분리되었다는 것. 왼쪽 눈의 붉은 기는 그 갈라짐의 흔적이었다. 낙엽둥지는 이제 진화의 문턱에서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아침이 깊어지자 하루는 모두를 메인 터널로 불렀다.

자리는 정식 회의도 아니었고, 훈련도 아니었다. 여섯이 둥글게 앉은 모양. 페르는 평소처럼 벽에 반쯤 기대었고, 짓다는 설계도 통을 무릎 위에 놓았고, 파종은 버섯 하나를 앞다리에 들고 있었다. 모아는 한쪽 다리를 늘어뜨린 편한 자세였다. 나라는 치유 가방을 옆에 두고 앉았다. 칼라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는데 — 어제보다 훨씬 안정된 자세였다. 회복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루는 한가운데 앉았다.

“어제 여왕님이 저한테 보여주신 거 — 하나씩 이야기할게요.”

모두가 조용히 들었다. 하루가 천천히 이야기를 풀었다. 기억의 방. 벽의 숫자들. 1조라는 기준선. 세대 레벨이 누적 먹이의 세제곱근으로 오른다는 것. 유산 포인트가 두 세대 레벨의 차이로 계산된다는 것. 그리고 — 유산 업그레이드. 다음 세대에 가져갈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보물.

“여왕님은 — 유산 업그레이드의 첫 번째 것 이름을 알려주셨어요.”

“뭔데?” 모아가 물었다.

“‘유산의 돌판에 첫 번째 이름을 새기다.’ 여왕님은 그렇게 부르셨어요. 교재에는 — ‘legacy_start’라고 적혀 있었어요. 이걸 사야 비로소 세대 보너스가 해금돼요. 그다음부터 다른 유산을 사나갈 수 있고요.”

“얼마나 드는데?”

“유산 포인트 1점. 첫 진화로 얻을 포인트 중 가장 싼 거예요. 나머지는 — 첫 번째 이름을 새기고 난 다음에야 보여요.”


침묵이 짧게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모두가 같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 방어선, 이 수로, 이 창고, 이 터널, 이 농장 — 전부 버리고 시작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계산에 먼저 숨을 내쉰 것은 짓다였다.

“내가 먼저 말해볼게.”

짓다가 설계도 통을 앞으로 밀었다.

“나는 이걸 버려. 이 설계도는 — 내가 여기 와서 낙엽둥지 전체를 측량하고 그린 거야. 0.1도까지 맞춘 벽, 2.3도 경사의 배수로, 2.8도 통풍구 각도. 수로 완공 도면은 여기 제일 뒷장에 들어 있어. 이게 전부 — 사라져.”

짓다가 설계도 통을 내려놓았다. 그러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

“근데 내가 잃는 건 이 종이가 아니야. 이 종이는 — 다시 그릴 수 있어. 내가 잃는 건, 이 낙엽둥지를 처음 본 날의 기억이야. 그때 벽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었는지, 어디가 약했는지, 어떻게 고쳐야 할지 — 그 처음 볼 때의 눈은 다시 안 와.”

짓다가 짧게 웃었다.

“건축가한테 처음 보는 눈은 귀한 거거든. 한 번 고쳐놓고 나면, 그 굴이 원래 어땠는지 점점 잊어. 다음에는 — 이미 내가 고친 굴을 처음부터 다시 짓는 거야.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내가 잃는 건 예전의 낙엽둥지야.”

파종이 짓다 쪽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아가 다음이었다.

“나는 수확 도구를 버려.”

모아가 옆에 둔 묵직한 턱 보강구 — 채집개미가 큰 먹이를 물 때 턱에 덧대는 기구 — 를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만들어준 건 파종이었어. 내가 처음 낙엽둥지 왔을 때 턱 다쳤잖아. 파종이 뿌리 섬유로 이걸 엮어서 줬지. 그때부터 이거 없이는 큰 먹이 못 날랐어.”

“간직하면 안 돼?” 칼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돼. 진화는 모든 걸 되돌리는 거라고 했잖아. 도구도, 강화도, 흔적도. 이건 — 그 모든 날의 증거야. 증거가 사라진다는 거, 그게 진짜 무거운 거 같아.”

모아가 잠깐 눈을 감았다.

“근데, 파종이 살아 있으면 — 또 엮어줄 거잖아. 그치?”

“엮어줘.” 파종이 말했다. “더 잘 엮어줄게.”

모아가 웃었다. 큰 체구가 웃으면 터널이 살짝 진동하는 것 같았다.


나라가 치유 가방을 앞으로 밀었다.

“저는 이 안에 든 걸 버려요. 이건 — 제가 낙엽둥지에 오면서 직접 만든 치유 페로몬 배합이에요. 각자의 체질에 맞게 조금씩 달라요. 모아 씨는 큰 근육이라 근이완제 비율이 높고, 파종 씨는 땀에 이스트 냄새가 섞여서 쓰는 유화제가 달라요. 짓다 씨는 외골격에 점토 가루가 많아서 세척제를 먼저 뿌려야 하고, 칼라 씨는 — 이틀 전에 독거미 독을 맞았어서 해독 기저가 따로 들어 있어요.”

나라가 가방 안을 잠깐 들여다봤다. 작은 유리 병들이 여럿이었다.

“이 배합을 만드는 데 — 한 달 걸렸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보면서. 각자가 몸을 어떻게 쓰는지, 어디서 지치는지, 어떤 향에 안심하는지. 이 배합은 제가 가진 게 아니라, 여러분이 저한테 빌려준 거예요. 진화하면 — 이 배합은 사라져요. 여러분은 남지만, 제가 그동안 읽어낸 여러분의 리듬은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해요.”

칼라가 나라 쪽을 오래 보았다.

“한 달 안에 다시 읽을 수 있어요?”

“더 빠를 거예요. 한 번 읽어본 몸은 — 처음 읽는 몸보다 빠르니까요.”


칼라가 다음으로 말했다.

“나는 — 정찰 구역을 버리는 거야.”

칼라가 앞다리로 흙바닥에 지도를 그렸다. 낙엽둥지 주변 숲의 개략도. 북서쪽, 북쪽, 동쪽, 남쪽, 남서쪽. 각 방향마다 작은 표시가 있었다.

“이건 내 머릿속에 있는 지도야. 강화 이후로 내가 새로 그린 거. 어디에 사마귀 알집이 숨어 있고, 어디에 진딧물 길목이 있고, 어디에 물이 고여 있고, 어디에 독버섯이 있고. 북서쪽 불개미 척후 흔적도 여기 있어. 독거미 여왕의 거미줄이 쳐져 있던 자리도.”

“그것도 — 진화하면 사라져?” 모아가 물었다.

“아니. 내 기억은 사라지지 않아.” 칼라가 고개를 저었다. “사라지는 건 그 지도의 의미야. 지금 이 지도는 낙엽둥지의 일꾼 숫자, 창고 용량, 방어선 배치랑 맞물려 있거든. 북서쪽을 내가 지금처럼 긴장하면서 보는 이유는, 지금 이 굴이 그만큼만 버틸 수 있기 때문이야. 진화하고 나면 — 같은 숲이어도 읽는 방식이 달라져. 내 지도는 살아남지만, 이 지도의 의미는 한 번 죽어.”

칼라가 손을 흔들어 흙바닥의 지도를 흐트러뜨렸다.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그래도 내 다리는 살아 있으니까. 다시 걸으면 돼.”


페르가 벽에서 몸을 떼었다.

“나는 — 내 칼이 가리키던 방향을 버린다.”

조용한 목소리였다.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나는 이 굴에 와서 한 가지 방향을 잡았다. 북서쪽. 이그니스가 올지도 모르는 방향. 내가 경비를 서면서 바라보던 그 어둠. 내 몸은 여기 있었지만, 내 시선은 언제나 북서쪽이었다. 나는 그 방향을 위해 수로 설계에 참여했고, 입구 경비를 맡았고, 내 흉터를 관리자에게 보여줬다.”

페르가 잠시 멈췄다.

“진화하면 — 그 방향이 사라진다. 아니, 사라지지는 않지만, 다시 처음부터 잡아야 한다. 이그니스는 여전히 어딘가에 있고, 본대는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언젠가’가 — 다음 세대의 언젠가가 되는 거다. 내가 지금 이 칼을 겨누고 있던 순간은 — 이 세대에만 있었다.”

페르가 왼쪽 더듬이를 살짝 들었다. 흉터가 오늘도 밤빛에 반짝였다.

“그게 무거운 거다. 내가 다음 세대에도 살아 있을 거라고 누구도 나한테 보장 못 했어. 하지만 — 만약 살아 있다면, 나는 다시 여기로 올 거다. 이 굴로. 이 방향으로. 그래서 다시 겨눌 거다.”

페르가 자리에 앉았다. 평소보다 조금 낮게 앉았다.


터널이 잠깐 조용해졌다.

파종이 손에 들고 있던 버섯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모두가 파종을 보았다.

“나는 이걸 버려.”

갈색의 둥근 버섯 하나. 파종의 앞다리 위에서 희미하게 빛을 반사했다.

“이건 어린 씨야. 지난주에 지하 호수 근처에 심은 특수 품종. 파종해도 이번 세대 안에는 수확 못 해. 다음 달쯤에야 겨우 작은 머리가 흙 위로 올라올 거거든. 이건 내가 다음 계절을 위해 남긴 씨였어. 이번 세대를 위한 수확이 아니라, 내가 여기 계속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심은 거야.”

파종이 버섯을 조금 더 들어 올렸다.

“진화하면 — 이 씨는 죽어. 내가 다음 세대에 와도, 이 씨는 이미 없는 거야. 파종에 심은 나의 ‘다음 계절’이 통째로 사라지는 거야. 그게 — 건물 무너뜨리는 거보다, 도구 버리는 거보다, 더 이상한 거 있더라.”

파종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근데 어제부터 나 계속 생각했는데, 농부한테는 익숙한 이야기거든. 씨앗이라는 건 말이야 — 죽어야 싹이 트지.”

그 말이 떨어졌을 때, 터널의 공기가 바뀌었다.


짓다가 고개를 들었다. 짓다가 오래 들여다보던 설계도 통 위로 시선이 옮겨졌고, 그 시선이 조금 흔들렸다.

모아가 옆에서 조용히 웃었다. 조금 울 것 같은 웃음이었다.

칼라가 벽에서 등을 떼며 물었다.

“그거 — 너 예전에도 비슷한 말 했었지?”

“했지.” 파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3화 때 아마? 하루 처음 만나서 버섯 농장 만들 때. 그때는 그냥 농부의 입버릇이었는데, 오늘은 — 좀 다르게 들려.”

“다르게 어떻게?”

“그때는 씨앗이 버티는 얘기였어. 땅에 묻혀서, 썩지 않고, 시간을 견뎌서, 싹이 트는 얘기. 오늘은 — 씨앗이 진짜로 죽는 얘기야. 껍질이 깨지고, 안쪽이 부풀고, 원래의 씨앗 모양은 사라지는 거. 싹이 나오려면 그게 먼저 일어나야 돼. 씨앗은 싹을 낳는 게 아니라, 싹으로 변하는 거거든. 변하려면 — 원래의 자기가 죽어야 해.”

파종이 버섯을 자기 무릎 위에 다시 놓았다.

“우리가 오늘 여기서 얘기한 것들 — 도구, 설계도, 치유 배합, 정찰 지도, 칼의 방향, 어린 씨. 이거 다 씨야. 이 씨가 이번 세대의 껍질이야. 진화는 — 이 껍질이 깨지는 거지, 안의 우리가 죽는 게 아니야.”


페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파종.”

“응?”

“너는 평소에 말을 아끼는데, 한 번 하면 날카롭다.”

“칼은 네 전문이잖아.” 파종이 웃었다. “나는 씨만 던져.”

모아가 소리 내어 웃었다. 짓다가 설계도 통을 다시 안으로 당겼다. 조금 더 가까이.

나라가 치유 가방을 앞으로 밀었다가 — 다시 자기 쪽으로 당겼다. 어떤 결정이 그 동작 안에 있었다.

“저도 파종 씨 말에 동의해요. 치유사는 — 몸을 여러 번 읽어본 적 있어요. 같은 몸이어도 계절이 지나면 다르게 읽혀요. 한 번 읽은 몸을 다시 읽는 건 처음 읽는 것보다 더 깊이 읽는 거예요. 진화를 넘고 나면 — 저는 여러분을 지금보다 더 깊이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칼라가 나라 쪽을 오래 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나도 — 다시 걸을게.”

여섯의 목소리가 조금씩 겹쳤다. 짓다가 “다시 그린다”, 모아가 “다시 나른다”, 페르가 “다시 겨눈다”, 나라가 “다시 읽는다”, 칼라가 “다시 걷는다”, 파종이 “다시 심는다”.

여섯 개의 “다시”가 터널에 쌓였다.


하루는 그 순간을 오래 들었다.

그리고 — 오늘이 아니면 꺼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기나가 경고했던 것 — 힘은 알려지는 순간 위험이 된다는 것 — 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 이 자리의 무게 앞에서는 감추는 것이 오히려 무례해 보였다. 이 여섯 마리가 각자의 가장 소중한 것을 꺼내놓은 자리였다. 하루가 품속에 숨기고 있는 것은 — 꺼내지 않는 이상 이 자리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루가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저도 — 보여드릴 게 있어요.”

여섯이 고개를 들었다.

하루가 여섯 장의 카드를 꺼냈다. 한 장씩, 천천히. 메인 터널의 바닥에 부채 모양으로 펼쳤다. 여섯 장이 희미하게 빛을 머금고 있었다. 밤빛에 반투명한 표면이 은은히 반사되었다.

모두가 숨을 삼켰다.

“이게 — 뭐예요?” 모아가 물었다.

“카드예요. 71장 중의 여섯 장. 제가 이 굴에 처음 온 날, 칼라랑 같이 숲에서 첫 카드를 발견했어요. 그다음부터 — 뭔가 큰 일이 있을 때마다 한 장씩 나타났어요. 딱정벌레를 잡았을 때. 폭우 뒤에 지하 호수를 찾았을 때. 농장을 완성했을 때. 롤리 씨가 벚꽃 꽃잎을 주고 갔을 때. 그리고 — 며칠 전 독거미 여왕 전투 후에.”

하루가 한 장씩 손으로 가리켰다.

“여왕의 알. 거대 딱정벌레. 버섯 농장. 지하 수원. 벚꽃 꽃잎. 독거미 여왕.”

짓다가 설계도 통을 내려놓고 카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거 — 내가 본 적 있어. 딱정벌레 잡고 난 다음 날, 하루가 잔해 근처에서 뭘 주웠잖아. 그때 그거였어?”

“맞아.”

“버섯 농장 완성한 날 아침에도 하루 눈이 이상했지.” 파종이 덧붙였다.

“맞아요.”

하루는 숨을 한 번 고른 뒤 덧붙였다.

“그리고 — 한 가지 더 있어요. 저는 이 카드를 읽을 수 있어요.”

“읽는다고?”

“카드를 손에 쥐면 — 카드가 담고 있는 기억이 제 의식으로 흘러들어 와요. 여왕의 알에서는 따뜻함과 고대의 고동을 느꼈어요. 딱정벌레 카드에서는 수백 년의 허기와 죽는 순간의 당혹을요. 지하 수원에서는 수만 년 동안 한 방울씩 모인 물의 고요를요. 그때마다 제 눈이 — 호박색에서 조금 더 환해진대요. 여왕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여섯이 하루를 오래 보았다. 하루의 눈을. 지금은 평소의 호박색이었지만 — 오늘 저녁 이 여섯이 본 그 눈은, 앞으로 다르게 기억될 것이었다.


페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왕님이 그걸 — 비밀로 하라고 하셨지.”

“네. 힘은 알려지는 순간 위험이 된다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숨겼어요.”

“오늘 왜 꺼냈어?”

하루는 잠시 생각했다. 대답이 정확해야 할 것 같았다.

“여러분이 오늘 각자의 가장 소중한 걸 꺼냈으니까요. 저만 품속에 계속 숨기고 있는 건 — 오늘 같은 자리를 거짓말로 만드는 것 같았어요.”

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종이 카드 한 장 — 버섯 농장 —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손을 뻗어 만지려 하다가 — 멈췄다.

“내가 만져도 돼?” 파종이 물었다.

“네. 근데 읽는 건 — 제 눈에만 보이는 것 같아요. 만지면 따뜻한 느낌 정도는 들어요.”

파종이 조심스럽게 버섯 농장 카드에 앞다리를 댔다.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 살짝 웃었다.

“따뜻하네. 이거, 내 농장 느낌이야.”

짓다가 팔짱을 낀 채로 카드들을 훑어보았다. 건축가의 눈으로. 공학적 구조가 있는지를 찾는 눈으로.

“카드 여섯 장이 — 진화하면 사라져?”

하루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모르겠어요. 근데 저는 —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카드는 한 세대 안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에요. 71장이라는 숫자 자체가 한 세대에서 모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에요.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기억이어야 71장이 의미가 있어요.”

“여왕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어?”

“직접은 아니에요. 근데 — 어젯밤에 여왕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빛과 그림자가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여왕이 언젠가 나타날 거라고 한다. 그 여왕은 71장의 카드를 모두 읽을 수 있다.’ 이 예언이 맞다면, 카드는 한 세대 안에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페르가 낮게 물었다.

“71장 다 읽는 여왕.”

“네.”

“그 여왕이 — 너냐.”

하루는 웃었다. 조금 어색한 웃음.

“제가 여왕은 아니에요. 전 관리자예요.”

“그래도 카드는 네가 읽지.”

“그건 맞아요.”

페르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웃었다. 흉터가 같이 움직였다.

“관리자도 나쁘지 않아. 여왕은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지만, 관리자는 어디든 갈 수 있거든.”


나라가 조용히 말했다.

“관리자님.”

“네.”

“이 카드들 — 저도 어떤 기분으로 보는지 말씀드려도 돼요?”

“말해주세요.”

“저는 간호개미라서 몸의 리듬을 읽잖아요. 카드 여섯 장을 한 번에 보니까 — 여섯 가지 다른 박동이 느껴져요. 여왕의 알의 박동은 여왕님 심장 리듬이랑 비슷하고, 딱정벌레 카드는 느리고 무겁고, 버섯 농장은 진짜 느려서 박동이라기보다 계절의 박동 같고, 지하 수원은 거의 멈춰 있는 것 같은데 안 멈췄고, 벚꽃 꽃잎은 짧고 빠르고, 독거미 여왕은 — 여덟 박자가 겹친 복합 리듬 같아요.”

“그게 다 다른 박자예요?”

“네. 모든 생명은 박자가 있어요. 카드는 그 박자를 — 저장하는 장치 같아요. 저장된 박자가 지금 여기서 — 서로 맞춰지고 있어요.”

나라가 카드 여섯 장을 부드럽게 감싸듯 바라보았다.

“서로 맞춰진다고요?”

“처음에는 여섯 개의 다른 박자였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 조금씩 같은 리듬을 타기 시작했어요. 여러분이 다 같이 앉아 있어서 그런가 봐요.”


그 말에 터널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 아주 잠깐, 진짜로 느껴졌다. 여섯 장의 카드가 공기 중에 미세하게 빛을 내는 것이. 여섯 장의 카드가 서로를 인지하는 것이.

칼라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이 카드는 — 오늘 같은 자리를 위해서 나타난 걸지도 모르겠네.”

“오늘 같은 자리요?”

“오늘 우리는 각자가 가장 소중한 걸 꺼냈잖아. 근데 그 소중한 게 — 다 연결돼 있어. 짓다의 설계도는 모아가 들고 나른 돌로 쌓였고, 그 돌은 파종의 점토랑 섞였고, 그 점토는 나라의 페로몬으로 굳었고, 그 벽은 페르가 지켰고, 그 너머를 내가 정찰했잖아. 우리 여섯이 각자 따로 있을 때는 여섯 개의 박자였는데, 오늘은 — 한 박자로 맞춰졌어. 그 순간 카드가 빛나는 것 같아.”

하루는 카드를 천천히 모아 올렸다.

“오늘 이 자리 — 저도 평생 기억할 것 같아요.”

“진화해도?” 파종이 웃으며 물었다.

“네. 오늘만큼은 — 진화해도 안 잊을 자신이 있어요.”


회의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진화를 언제 할지 — 그것은 레기나와 하루가 내일 최종적으로 결정할 일이었다. 오늘의 자리는 결정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결정을 감당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한 자리였다.

여섯이 각자의 일로 돌아갔다. 하지만 각자의 일로 돌아가는 걸음이 — 아침과 달랐다.

짓다는 설계도 통을 들고 메인 터널 끝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새 수로를 설계하려는 자세가 아니었다. 설계도를 한 번 펼쳐 — 마지막으로 지금의 낙엽둥지를 눈에 담는 자세였다.

모아는 식량 창고로 갔다. 가득 찬 버섯 창고를 한 바퀴 돌았다. 손끝으로 창고의 벽을 한 번씩 두드렸다. 작별 인사였다.

파종은 버섯 농장 가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제 손에 들고 있던 어린 씨 버섯 — 그 곁에 잠시 앉았다. 아무 말 없이. 씨앗을 위한 침묵이었다.

나라는 여왕의 방으로 돌아갔다. 여왕의 알 곁에 앉아 오래 숨을 골랐다. 알의 맥동이 오늘은 유난히 일정했다 — 여왕의 심장 리듬과 거의 완벽하게 포개진 박자.

페르는 입구로 돌아갔다. 북서쪽을 한 번 바라봤다. 그리고 오랜만에 — 그 방향에서 시선을 거두어 내부 터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저녁의 그 여섯 자리가 있던 방향으로. 병정개미의 시선이 오랜만에 안쪽을 향했다.

칼라는 회복실에서 다시 일어섰다. 혼자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나라가 말한 열흘의 회복이 빠르게 앞당겨지고 있었다.


하루는 여왕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 카드 여섯 장을 다시 한 번 꺼내봤다.

여섯 장이 — 조금 전 터널에서 봤을 때보다 — 미세하게 더 밝아 보였다. 나라가 말한 “박자가 맞춰진다”는 것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카드는 한 자리에서 서로를 인지한 뒤로, 그 인지를 잊지 않고 있었다.

하루는 여왕의 방 문 앞에 섰다. 레기나에게 오늘의 자리를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문을 열기 전 한 번 더 생각했다. 진화.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 그리고 — 버리기 위해 먼저 인정해야 하는 것들.

파종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씨앗도 죽어야 싹이 트지.

그리고 오늘, 하루는 처음으로 그 말을 완전히 이해했다. 죽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는 것이었다. 낙엽둥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단지 — 지금의 형태로는 끝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형태로 다시 시작할 것이다.

하루가 여왕의 방 문을 열었다.


다음 화 예고: 진화의 아침. 여섯 개의 박자와 하나의 여왕이 기억의 방에 모인다. 레기나가 처음으로 왕좌에서 일어나 긴 복도를 걷는다. 숫자가 새겨진 벽 앞에서 — 하루의 호박색 눈이 가장 밝게 빛난다. ‘유산의 돌판에 첫 번째 이름을 새기다.’ 1점짜리 유산이 낙엽둥지에 내려앉는 순간, 모든 것이 한 번에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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